한국 포크 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쎄시봉'의 천재 뮤지션 송창식. '고래사냥', '담배가게 아가씨', '우리는' 등 그의 노래는 한 시대를 정의했습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인한 수감 생활, 그리고 처조카 두 명을 입양한 가슴 찡한 사연까지. 그의 나이, 프로필, 노래, 그리고 파란만장했던 진짜 인생 이야기를 모두 알려드립니다.
'쎄시봉'의 천재, 송창식은 누구인가?
송창식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한국 포크 음악의 선구자 중 한 명이죠. 1968년, 윤형주와 함께 포크 듀엣 '트윈폴리오'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솔로로 전향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죠. 그의 독특한 창법과 천재적인 작곡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조영남조차 그의 노래 실력은 비판하지 못했죠. '고래사냥', '왜 불러' 등 수많은 명곡을 남겼습니다. 그는 지금도 '가객'으로 불리는 진정한 예술가입니다.
송창식 프로필 한눈에 보기
가수 송창식의 핵심 프로필 정보를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했습니다. 나이, 학력, 가족관계 등 기본 정보를 확인하세요.
- 이름: 송창식
- 나이: 1947년 2월 22일생 (2025년 6월 기준, 만 78세)
- 고향: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
- 신체: 164cm
- 가족:
- 아내: 한성숙 (1948년생, 고교 동창)
- 자녀: 1남 2녀 (친아들 1명, 입양한 자녀 2명)
- 학력: 서울예술고등학교 성악과 (중퇴)
- 데뷔: 1968년 '트윈폴리오' 1집
- 대표곡: '고래사냥', '왜 불러', '담배가게 아가씨', '우리는', '한번쯤', '사랑이야'
불우했던 유년 시절과 음악과의 만남
송창식의 어린 시절은 지독한 가난과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6.25 전쟁 중 아버지가 전사했습니다. 9살 때는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행방불명되었죠. 조부모 밑에서 자라며 그는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음악적 재능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인천중학교 시절, 그는 스스로를 '모차르트'라고 생각할 정도였죠. 서울예고 성악과에 수석 입학했지만, 가난 때문에 유급 통지를 받고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이후 그는 기타 하나만 들고 노숙하며 노래로 밥을 얻어먹는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트윈폴리오'와 70년대 포크 신드롬
송창식의 인생은 음악다방 '쎄시봉'에서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을 만났죠. 특히 윤형주와의 만남은 '트윈폴리오'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1968년 데뷔한 트윈폴리오는 아름다운 화음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윤형주가 유학을 떠나면서 그룹은 해체되었죠. 1970년, 송창식은 솔로 가수로 전향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음악으로 70년대 포크송 시대를 열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 '고래사냥'에서 '우리는'까지
송창식은 천재 작곡가이자 위대한 가수였습니다. 그의 노래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었죠. 시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 그리고 폭발적인 가창력이 어우러진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왜 불러', '고래사냥', '피리 부는 사나이' 등은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한번쯤', '우리는', '사랑이야' 등은 서정적인 감성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특히 펑키한 리듬의 '담배가게 아가씨'는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주는 곡입니다.
파란만장 인생사: 감옥, 대마초 루머, 그리고 재산
그의 삶은 논란과 시련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예비군 훈련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습니다. 20일간 감옥살이를 했죠. 당시 본보기로 구속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1970년대 연예계를 휩쓴 대마초 파동 때는 억울한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대마초를 피우지 않았는데, 오히려 밀고자로 몰렸던 것이죠.
또한 그는 사람 좋은 성격 탓에 보증을 잘못 서주거나 돈을 떼여 많은 재산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빈털터리가 아닙니다. 매년 들어오는 저작권료 수입만 해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아내 한성숙과의 운명, 그리고 두 아이 입양
송창식의 가족사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특별합니다. 그는 고등학교 동창인 한성숙 씨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가 아닌 두 아이를 입양해 친자식처럼 키웠죠. 여기에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송창식의 아내 한성숙 씨에게는 쌍둥이 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행위예술가였죠. 그녀는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하려 했지만 법이 바뀌어 무산되었습니다.
송창식 부부는 이 아이를 거두어 첫째 딸로 입양했습니다. 이후 처형은 인공수정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키울 사정이 되지 않았죠.
송창식 부부는 이 처조카마저 둘째 아들로 입양했습니다. 그렇게 친아들 한 명과 입양한 두 자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위대한 사랑과 책임감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한복과 스파게티, 괴짜 천재의 삶
송창식은 독특한 생활 습관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공연 때 항상 한복을 입습니다. 1975년 해외 공연에서 양복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시작된 습관이라고 하죠.
또한 그는 매일 같은 음식을 몇 년씩 먹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한때는 3~4년간 점심으로 매일 같은 가게에서 스파게티만 먹었다고 합니다. 컴퓨터를 6대나 사용하는 컴퓨터 고수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들 송결 씨는 유명 게임회사 NC소프트의 게임 기획자라고 하네요.
영원한 가객, 그의 음악은 계속된다
송창식은 지금도 여전히 무대에 섭니다. 최근에는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후배 가수 송가인을 칭찬하기도 했죠. 그의 목소리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탈한 도인 같은 그의 창법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죠. 불우한 환경과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그는 음악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노래는 시대를 위로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을 것입니다. 영원한 가객, 송창식의 음악을 응원합니다.